[한방칼럼] ‘이유 있는 고통’ 파킨슨병 환자의 변비,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?
2020.10.13
▲하한출 제세한의원 원장
말이 어눌해지고, 행동이 느려지고, 근육이 굳어 부쩍 종종걸음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아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. 뇌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노인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이다.
우리나라 60세 이상의 1%, 65세 이상에서는 2%가 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. 하지만 완치가 없는 병이라 약물에 의존해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.
파킨슨환자의 대부분은 신체움직임이 불편한 운동장애 증상만큼이나 변비, 불면증, 잠꼬대, 우울증 등의 비운동성 장애로 인한 고통이 크다.
올해로 7년차 파킨슨병 약을 복용중인 60대 K씨는 진단 초기 직장동료로부터 왜 이렇게 멍을 때리고 있느냐. 한숨을 많이 쉬냐는 핀잔을 들었다. 자꾸만 행동이 굼뜨고 떨리는 증상도 나타나 그저 우울증이 오는 건가 생각했다. 사실 K씨의 이런 증상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.
이미 40대 초반부터 어깨와 허리관절에 묵직한 통증은 늘 있어 왔고, 잠을 자다 허공에 팔을 휘젓거나 잠꼬대를 유난히 심하게 해 가족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. 변비도 심해 늘 아랫배의 묵직함과 더부룩함이 심했고, 그 동안 화장실을 가려고 유산균과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. 그러나 서서히 행동까지 느려지고 근육강직이 진행될 때까지 이것을 파킨슨병의 또 다른 증상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 K씨의 하소연이다.
실제로 파킨슨병 환자는 질환 발병 전 공통적으로 변비, 체중감소, 후각 이상, 삼킴 곤란 등의 소화기계 증상을 경험한다. 2009년 미국 메이요클리닉 월터 로카 박사가 학술지 <Neurology(신경학)>에 발표한 내용이다.
이것은 자율신경계가 망가지며 장운동이 일반인에 비해 2배 이상 느려지고, 여기에 항문근육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어 생긴 현상이다. 또 파킨슨병 약, 우울증 약을 복용한 이후 식욕이 떨어지고, 변비가 더 심해졌다는 환자도 많이 보고된다.
앞서 K씨는 그래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이후 하루 3시간씩 무조건 운동을 하고, 식습관도 잘 바꿔 호르몬 보충제 양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파킨슨병의 운동장애 증상은 많이 개선할 수 있었다. 그러나 변비만큼은 어찌할 수 없어 한의원을 방문했다.
가뜩이나 시간 맞춰 챙겨 먹어야 하는 양약들이 한 줌인데. 장운동을 촉진하는 약에 위장을 보호하는 약, 변비에 좋다는 각종 건강보조제까지 먹으려니 이러다 약에 치어 죽겠다 싶었다는 것이다.
필자는 K씨에게 우선 식사 후 바로 눕지 말고, 화장실 갈 걱정이 좀 덜한 오전시간에 물을 충분히 마실 것을 권했다. 꾸준히 오래 유산소 운동을 하도록 했다. 근육강직을 완화하는 동시에 장운동을 돕기 위해서다.
또 소화가 어려운 밀가루 음식 대신 K씨가 진단받은 태양인-금음체질에 잘 맞는 오이와 포도, 키위, 포도당 주스를 권했다. 태양인-금음체질에는 독이 되는 유산균제품은 드시지 않도록 처방했다.
침 치료실에서 대장의 전반적인 기능을 호전시키는 중완, 대장유, 천추, 황유혈을 자극하는 시술을 하고, 오가피를 주재료로 한 청뇌공진단을 처방해 신체 발란스를 바로 잡았다. 이런 한방치료는 뇌혈류의 흐름을 도와 호르몬 보조제를 더 활성화해 증상의 개선에 큰 도움을 준다.
파킨슨병은 끝이 없는 길이다. 그러나 꾸준히 운동하고, 섭생을 조절하며 나아간다면 그 길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지 않을까. 그리고 「이 정도면 그래도 살만하다.」 생각이 들지 않을까.
그렇다면 치료 여정의 반은 성공한 것이다.